(현대경제신문, 2026.10.28) [데스크칼럼] 국가유산청장, '증도가자' 재심의 약속 지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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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26-10-28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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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국가유산청장, '증도가자' 재심의 약속 지켜야
꼼수 없는 '증도가자' 재심의, 국가유산청장 약속에 달렸다
세계 최고(最古) 금속활자본인 '직지심체요절'보다 최소 138년 앞선 것으로 추정되는 '증도가자(證道歌字)'를 둘러싼 국가유산청의 행태가 목불인견(目不忍見)이다. 10여 년 동안 과학적 검증 결과를 외면하고 억지 논리로 일관해 온 국가유산청이 급기야 감사원의 지적조차 철저히 무시하는 오만함을 보였기 때문이다.
감사원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2017년 증도가자의 문화재 지정 심의 당시 조판 실험 결과가 고의로 누락되고 조작된 심각한 위법 사항을 적발하고 재심의를 권고했다. 심의 당시, 심사를 맡은 공무원이 '조판 가능'이라는 핵심 실험 데이터를 고의로 누락하고 허위로 보고해 부결을 유도했다는 것이다. 비교 자료인 '석보상절'의 광곽 수축 사실을 누락해 정상적인 통계 분석상 '조판이 가능하다'는 결론을 '불가능하다'로 왜곡한 총체적 부실이자 조작이었다. 국가기관이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통계를 조작해 위원들의 눈을 가린 중대한 범죄 행위가 만천하에 드러난 것이다.
당연히 국가유산청은 즉각 과거의 오류를 바로잡고 투명한 재조사에 착수했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이들은 감사원의 뼈아픈 지적과 권고를 수용하기는커녕 지난 8월 통계방법론 등을 운운하며 이를 사실상 무시하고 부정했다. 그러면서 황당하기 짝이 없는 대안을 제시했다. 전국에 숨겨진 천 년 전 금속활자를 찾아보겠다며 ‘증도가자 일괄 공모’를 통해 기초조사부터 다시 하겠다는 것이다.
이미 연대 측정 등 과학적 검증을 통해 고려시대의 것으로 판명된 101점의 실체가 존재하고, 천 년 전 활자가 갑자기 나타날 리 만무한 상황에서 기약 없는 전국 공모를 강행하겠다는 것은, 재심의를 회피하고 무기한 시간을 끌어 또다시 부결을 유도하려는 꼼수일 뿐이다.
또한 증도가자가 담겨 있었다고 알려진 청동수반(水盤)과 초두(鐎斗)에 대한 정보가 없다며 부결 당시 내세웠던 억지주장도 되풀이했다. 활자 본체의 명백한 과학적 증거를 배제하고 부속 기물의 검증 불가를 이유로 유물의 진위를 부정하는 논리적 모순을 반복한 것이다. 증도가자를 세상에 처음 알린 서자학자 남권희 교수도 지난 23일 국정감사에 참고인으로 출석해 "내용물과 그릇이 다르다고 진위 여부를 묶어 판단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일축했다.
국가유산위원회의 행태를 보면 이곳이 문화유산을 보존하는 기관인지, 학계 카르텔의 이권 다툼을 수호하는 이익 집단인지 헷갈릴 정도다. 지난 2017년 문화재위원회는 방사성탄소연대측정 등 과학적 검증을 통해 고려시대 활자일 가능성이 입증됐음에도 불구하고 증도가자의 보물 지정을 부결했다.
부결 사태 이면에는 학계와 고미술계의 알력 다툼이 도사리고 있었다. 당시 분과위원장은 "장사하는 사람 물건을 보물로 지정해 값이 뛰면 누가 책임지느냐"는 본질에서도 벗어나고 학자의 자질을 의심케 할 편견을 드러냈고, 이 같은 논리가 심의를 지배했다. 심지어 국가기관 조사 과정에서 금속활자 5점이 훼손되는 돌이킬 수 없는 참사가 발생하기도 했다.
이 같은 참담한 상황 속에서 지난 1년여 동안 허민 국가유산청장이 보여준 태도는 무책임 그 자체다. 과거 부결을 주도했던 인사들이 여전히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며 국가유산청을 쥐락펴락하고 있지만, 이를 바로잡아야 할 수장은 기득권 카르텔에 놀아나는 허수아비 같은 모습을 보인 것이다. 2017년 데이터를 왜곡했던 담당 간사는 아무 징계 없이 국장으로 영전했고, 편향적 심의에 관여한 전문위원은 10년 넘게 자리를 꿰찬 채 회의에 참석해 입김을 불어넣고 있다.

올해 국정감사에서 허 청장은 정당한 문제를 제기하는 소장자나 학계·전문가들의 뼈아픈 충고에는 귀를 닫은 채, 기존 카르텔 위원들의 궁색한 변명만을 기계처럼 되풀이하며 감사 현장을 모면하기에 급급했다. 그는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한 임오경·조계원 국회의원의 날카로운 질타가 쏟아지고 나서야 마지못해 기존 101점의 활자를 전면 재조사하고 과거 부결에 참여했던 위원들을 전원 제척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국가유산청의 표리부동한 전력을 감안하면 이 약속이 제대로 지켜질지 강한 의구심이 든다. 감사원 권고조차 무시하고 '전국 공모'라는 기상천외한 꼼수를 부린 집단이다. 쏟아지는 비판을 피하려 내뱉은 빈말은 아닌지, 여론이 잠잠해지면 슬그머니 편향된 인사들을 다시 기용해 유야무야 덮으려는 것은 아닌지 철저한 감시가 필요하다.
시간은 결코 우리 편이 아니다. 국가유산청이 자기 식구 감싸기와 행정 편의주의에 빠져 발표 이후 16년 이란 금쪽같은 골든타임을 허비하는 사이, 중국은 발 빠르게 개성에서 출토된 활자를 자국의 송·원대 주조 활자라 주장하며 세계 최초 금속활자 종주국 타이틀을 탈취하려 야욕을 드러내고 있다. 내부의 기득권 싸움 탓에 우리 스스로 위대한 문화유산을 내동댕이치고 있는 꼴이다.
이번 재조사 약속마저 과거처럼 흐지부지 넘기려 한다면, 이는 단순한 직무유기를 넘어 역사적 범죄에 동조하는 행위가 된다는 것을 국가유산청은 명심해야 한다. 허 청장은 국정감사장에서 국민 앞에 한 약속대로 기존의 문제 위원·전문위원들을 철저히 배제하고, 한 점 의혹 없는 객관적이고 신속한 재심의 절차에 즉각 돌입해야 한다. 그것만이 훼손된 국가기관의 신뢰를 회복하고 지정 부결 이후 10년 가까이 표류해 온 증도가자의 진실을 온전히 밝히는 유일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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